追慕詞..유성엽 국회의원

2009-09-01     정읍시사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신을 불러 봅니다.

 

토머스모어님! 사랑하고 존경하는 토머스모어님!

이제야 당신 목소리로 당신을 불러봅니다. 당신의 체취를 모르고 당신의 흔적만을 기억하는 제게 토머스모어는 낯선 당신입니다. 당신 떠나고 감당할 수 없는 그 이름의 울림에 황망한 글 올립니다.

삶이 김대중과 함께 할 때 이 땅은 이른 아침처럼 분주했습니다. 우리들의 희망 고비마다 죽다 살아오던 토머스모어에게 이 땅은 고난의 십자가였습니다. 당신은 삶 가까이에서는 국민과 함께 했고 그 삶처럼 죽음이 다가오면 신과 함께 오직 한 길을 가고자 했습니다. 그 길을 가는 내내 당신의 신앙은 국민이고 당신의 종교는 하느님이었습니다.

DJ. 참 많이 보고 들었던 당신입니다. 한 쪽에서 힘으로 눈 먼 신화를 만들던 때, 바람으로 돌며 민담이 돼가던 당신의 이름입니다. 진실과 소문이 섞여 떠돌던 때… 건조하고 각진 말들이 당신을 흐리게 하였습니다.

신문 특유의 냄새를 덧대 더욱 불온했던 이름입니다. 어느 날은 왼종일 저자거리를 돌다 밤늦은 선술집에서 수군거리던 이름입니다. 또 어느 날은 한꺼번에 쏟아져 한(恨) 풀듯이 부르다 쫓기던 이름입니다. 당신이 걸었던 오직 한 길에 여러 빛깔의 무늬로 펄럭이는 당신의 그 이름입니다.

은유의 시절, 당신은 선생님으로 버텼고 끝내 우리 곁에 살아남아 인동초가 되었습니다. 안방에서 서재로 출근했다는 반듯한 일상, 깨알을 엮어 띄운 편지와 두 개의 문패로 알린 사랑법, 한 순간도 놓치지 않았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인식…. 원칙을 지키며 지혜롭고자 했던 당신의 가르침입니다. 당신은 천생 선생님이십니다.

당신은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탔습니다. 어찌 계절만 탓하겠습니까? 몸서리쳐지는 한기가 겨울에만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인동초를 겨울을 이겨내고 고난을 극복한 꽃이라 하지 않겠습니다. 밖으로는 세상을 휘감던 냉혹함에 떨면서도 안으로는 칼날 같은 단정함을 잃지 않았던 당신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극한의 추위를 참다 참다 전설처럼 꽃이 되어버린 것이겠지요. 하여, 떠나실 때도 이번 여름을 꽉 채우신 것이겠지요.

김대중 대통령님! 그해를 잊지 않으시겠지요. 땀과 눈물이 절망과 한기를 털어내던 그해 12월, 그 겨울 한복판에서 피어오르던 노란 봄빛을… 희망을…. 진심으로 따뜻했습니다.

당신은 5년 세월이 꿈길 같기를 바랐겠지요. 당신의 꿈이 오롯이 현실이 되는 그 길을 가셨겠지요. 어느 자리에서 무슨 상을 받는다 해도 당신은 잊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몸은 그대로 불편한 조국이었지요. 민주, 평화, 인권, 화해 그리고 통일…. 국민 앞에 서되 국민의 손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당신은 몸도 맘도 바빴습니다. 이 땅을 다시 추스르는데 당신은 당신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다시 시간을 탓합니다. 당신의 이 땅과 우리들에 대한 진한 정성을 말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떠나기 전까지 우리는 잊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는 걸 잊었습니다. 으르렁거리는 말들에 무심하려 애썼습니다. 문득 느껴지는 한기마저 익숙해지려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침내 당신은 진정한 이 땅의 어른이십니다. 아직도 차마 어쩌지 못한 꿈을 쥐고 떠난 당신은 여전히 5월 같은 어른이십니다. 어른이 떠나시던 날. 영결(永訣)은 영원한 헤어짐이기도 하지만 영원한 비결(秘訣)이라는 것도 우리가 알게 되었지요. 영결식이 있던 날 그날은 어른의 비결이 이 땅에 전해지는 날이었지요. 당신의 눈물과 한과 행동 아니 전 생애가 이 땅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그 비결들인 당신의 일기도 마지막 원고도 우리가 한 목소리로 말하겠습니다.

DJ, 선생님, 인동초, 대통령님 … 이 땅의 어른이신 당신,

산은 산은 다 당신 무덤 같은데, 칠보산에서 당신을 불러봅니다.

그리고 다시 사랑하고 존경하는 토머스모어님! 편히 쉬십시오.

당신이 없는 이 땅에 소슬한 가을이 딴 짓처럼 오고 있습니다. 강물처럼… 들꽃처럼…무지개처럼…, 땡볕아래 노거수(老巨樹)같았던 당신의 그늘을 잊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이것 하나는 잊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아침 일찍 햇살처럼 일어나 진실로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서는 늘 희망을 품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