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칼럼] 피히테의 ‘독일국민에게 고함’이 절절한 가을 아침

장기철 (재경전북자치도민회 수석부회장‧김대중재단 정읍지회장)

2024-09-10     이인근 기자

어느덧 하늘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가을은 풍성하다고들 하지만 이번 가을은 별로 기대난이다. 날씨 마저 불쾌지수를 높이는데 한 몫하고 있다.

흰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가 지나고 추석 한가위가 며칠후로 다가오는데도 무더위는 좀처럼 물러서지 않을 기세이다. 사상 유례없는 불경기로 고통을 받고 있는 자영업자와 건설업자, 중소상공인들의 체감 경기는 최악이다.

나라 곳간은 거덜나고 골목상권은 줄폐업하며 민생은 도탄에 빠진 엄중한 상황인데도 정치권은 끝없는 정쟁으로 치닫고 있어 국민이 도리어 정치와 나라를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서 우리 고장은 더욱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모든 경제지표가 전국 최하위권이라 자생적 경제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중앙 정부의 의존도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은데도 윤석열 정부의 예산과 사업 홀대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새만금 잼버리 책임 공방 이후 전북에 대한 정치 보복성 예산 삭감과 국책 사업의 지연은 예견된 일이었지만 이제는 노골적인 전북 고립 전략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우리 전북 정치권의 리더쉽 부재에서 초래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중앙 무대의 변방으로 전락해 수모를 겪고있는 우리 고장은 지역 현안 마저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 풀어야할 지역 현안인 전주,완주 통합군산과 김제,부안을 아우르는 새만금 특별자치단체 신설’, ‘농생명바이오 단지 인프라 구축등은 서로 싸우느라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역 정치권이 오히려 소지역주의를 부채질해 해법을 더욱 꼬이게하고있다는 지적이다. 우리 일을 우리끼리도 해결하지 못하는 판이니 중앙으로부터 없신여김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도 모른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데, 우리 전북이 다시 똘똘 뭉쳐 낙후성을 떨쳐버리고 오뚜가처럼 일어설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필자는 이 지점에서 19세기 초 나폴레옹에 짓밟린 독일 국민들을 부추기고 일으켜세운게 독일의 사상가 피히테를 떠올린다.

우리 정읍, 더 나아가 전북에서도 피히테 같은 인물이 출현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피히테의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강연록 저서를 소개하고자 한다.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저서는 나폴레옹 점령 치하의 암울한 시기에, 독일 베를린 한림원에서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당시 독일 국민들에게 자유와 독립 기운을 불러 일으킨 피히테의 14차례의 강연을 요약해 출판한 책이다.

이 강연 이후 분열된 독일은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대동 단결해 프랑스의 나폴레옹군을 몰아내고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대업을 이뤄내 세계 일류 국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피히테가 강연하던 시기는 프랑스군의 점령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목숨을 건 일이었다. 출판업자인 파름이 피히테에게 공감하여 반불적(反佛的) 서적을 펴냈다는 이유로 총살을 당할 정도로 무서운 시기였다.

밖에서는 프랑스군의 군가와 말발굽소리가 들리고, 강당에는 감시병의 눈초리가 싸늘한 가운데에서도 피히테는 굽히지 않고, 독일 국민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강연을 강행했는데 그의 주제는 주로 교육중흥(敎育中興)을 통한 민족해방이었다. 이 책은 국권의 회복과 영광을 위한 실천적 견해들로 가득 차 더욱 공감을 얻었다.

이 강연의 요점은 독일 국민을 패망에 이르게 한 근본적 원인을 이기심에서 찾고 이 이기심을 새로운 국민 교육에 의해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국민 교육은 주체적인 정신 활동을 중시하는 페스탈로치의 교육 사상과 결합되는데 이러한 교육을 통해 독일의 참된 민족 의식이 각성될 때, 독일 국민은 잃어버린 독립을 되찾고 세계사적인 민족으로서 우뚝 설 수 있다고 설파한 것이다.

피히테가 생각하는 새로운 교육은 전국민 교육으로서, 학생의 정신적 자주 활동을 중시하고 자극하는 교육이다.

피히테는 페스탈로치의 종교론에 절대적으로 찬성하고 페스탈로치를 종교 개혁의 완성자인 루터와 비견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높게 평가했지만 그는 페스탈로치의 교육론에도 약점이 있다고 비판한다.

요컨데 피히테가 생각하는 국민 교육은 일반적인 인간 교육으로서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자아를 스스로 발견하고 자신의 정신을 개발해 나가도록 하는 자기 중심적 주체적 교육을 말한다. 피히테의 관심은 나락으로 떨어진 독일 국민을 분발시키는 교육의 길은 무엇인가 하는 데 있었다.

피히테에 의하면 인간의 이성은 언어를 매개로 전개되므로 독일어가 독일인에 의해 형성되기보다는 도리어 독일인이 독일어에 의해 형성된다고 보았다. 언어는 그 민족의 특성을 형성하는 결정적 요건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독일인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독일어의 사용이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전북의 사투리와 억양 등 전북인 고유의 언어 생활이 훼손돼가는 안타가운 현실에 주목한다. 표준말을 빠르게 습득한 것이 혹여 전북의 정체성을 무너뜨린 요인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해본다. 지역 연대의식이 강한 우리 이웃인 전남이나 영남인들은 아직도 어투가 강한 그들만의 사투리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과 비견되기 때문이다.

한가위 추석을 앞두고 우리 지역 또한 230년 전 독일이 처한 암울한 현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터. 우리 고장에서도 피히테 같은 인물이 나타나 패배주의와 이기주의를 깨뜨리고 지역 부흥의 정신적 토대를 만드는 그 날이 빨리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