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총액인건비제 유보에 부쳐

2005-07-31     정읍시사
벌집을 쑤셔 놓은 듯하다.

쑤신 곳은 행자부고, 쑤셔진 곳은 정읍시다.

올 해 총액인건비제 시범기관으로 선정된 정읍시는 그간 각 계의 의견과 건의, 공청회를 거쳐 기본 틀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느닷없이 행자부는 지난 주 ‘상위직급의 확대는 자신들과 상의’라는 카드를 냈다.

그러면서 ‘기본 안을 마련 할 테니 시행을 잠정 유보 하라’는 강력한 전달(?)을 해 왔다.

총액인건비제는 ‘정부가 일정기준에 따라 자치단체별로 인건비 총액을 정해주면, 자치단체가 그 범위 내에서 자율적인 조직을 구성하고 이에 따른 운영을 실시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지방분권의 취지를 살려 지자체에게 자율과 책임을 갖게 한다는 계획으로서 정부는 올 해 10개 지자체를 선정해서 하반기부터 시범 실시하고, 오는 2007년부터는 전체 지자체로 전면 확대 실시 할 방침으로 있다.

이에 따라 시범 지자체로 선정된 정읍시는 행자부가 제시한 총액임금 571억원에 맞춘 기구개편에 들어갔다.

마련된 초안은 총 정원의 36명을 줄여서 절감된 인건비를 활용해 4급(국장급) 3자리, 5급(과장급) 4자리와 담당급인 6급 1자리 등 상위 직 8개자리를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편안이었다.

일부 시민단체와 공조직 일각에서 사전선거운동 포석 등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을 제외하고는 ‘승진기회의 확대’ 차원에서 정읍시청 공무원들은 내심 반기는 분위기였다.

이미 적체된 인사의 숨통을 조금이라도 뚫어볼 수 있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런데 행자부가 딴지를 걸고 나왔다.

정읍시는 강력반발하고 나섰다.

자율과 책임을 준다더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집어버린 꼴이 됐으니 말이다.

“아직 행자부는 과거 내무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자치단체가 하는 일마다 건건이 걸고넘어지며, 이권이 있는 사업이라도 시행할라치면 은근히 떡고물을 바라는 행태가 내무부의 근무행태였다는 것이 과거 기억속의 내무부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특히 직제의 개편과 관련해서는 더더욱 그랬다.

지방자치단체가 조직의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같은 공직에 있으면서도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이 중앙부처인 내무부의 담당 직원을 찾아다니며 술과 밥을 사 먹이며 로비를 펼쳐야 했던 것이 과거 ‘대(對) 내무부’식 업무처리였다.

참여정부 들어서 행자부는 정부부처 중 혁신과 개혁의 선도부서가 될 것을 자임했다.

지자체에 대한 태도 변화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지자체의 총액인건비제 시행은 그런 중앙부처의 개혁과 변화를 알리는 시작이 될 수 있었다.

‘직제와 인사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조건에서 자율을 준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행자부는 말을 바꾸며 다시 ‘과거로의 회귀’를 바라보는 듯하다.

정읍시청의 인사담당 부서 직원은 행자부의 담당직원과 통화하면서 ‘벽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벽창호에게 무슨 말이 통하겠는가 말이다.

자율이란 애시 당초 행자부의 사전에는 없는 말 인지도 모른다.

어이가 없기는 당사자들인 공무원들이 더욱 그렇다.

한 직급으로 많게는 20여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내기도(?) 했다.

그런데 상위직급을 늘린다고 하서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유보라니 다시 답답해진다.

유성엽 정읍시장은 “부딪쳐 보고, 안되면 전면 시행 때 까지 유보 할 수도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인건비와 정원, 둘 다 줄이는 개편안을 마련했는데도 상위직을 늘렸다는 이유로 제도 시행을 잠정 유보시킨 행자부의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불편하다.

일단 정읍시는 관련 직원을 행자부에 파견했다.

의중이 무엇인지 파악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결과는 ‘권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한다.

행자부는 빨리 입장을 정리하기 바란다. 더 큰 혼란이 발생되기 전에 말이다.

그런데 이참에 할 말도 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했다.

이번 총액인건비제도 시범 실시에 따른 기구개편안을 마련하면서 혹 간과한 부분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여론까지도 포함해서 말이다.

모든 일들이 실시되고 난 이후에 고치는 것은 바보들이거나, 준비가 덜 된 성급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