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정읍엔 어떤 산(山)이...④ 초산 - 아양봉

급하고, 완만한 경사로 정읍시민의 사랑 독차지, 축성시기 논란 초산성지…학문적 연구 서둘러야

2005-06-30     정읍시사
"초산(楚山)과 아양봉(峨洋峯)은 정읍의 명산(名山)이다."

"끝에서 끝이래야 겨우 2.5km 정도에 불과하지만 웬만한 명승지(名勝地)에 못지않아......"

우선 시내와 가깝고 아기자기한 산의 형태가 정겹단다. 적당히 힘에 겨운 코스로, 운동량도 만만치 않단다.

'산이 좋아, 아예 초산 밑 은하아파트로 이사를 했다'는 김 씨(60)의 초산 예찬이 끝이 없었다.

초산은 앞으로 시기 3동, 뒤로는 상교동에 걸쳐 서 있는 유서 깊은 산이다.

정읍현의 주산인 성황산(城隍山)의 안산(案山: 맞은편의 산)으로 높이는 232m.

풍수지리상 '쥐'에 비교되며 '노서하전(老鼠下田: 늙은 쥐가 밭으로 내려오는 형국)'의 좋은 묘지터가 있다고 한다. 명확히 명당으로 구별되어지는 곳은 전하지 않지만 초산마을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 곳곳에 오래된 무덤수가 상당하다.

주산보다 높아서 '이름 있는 인재가 없고, 객지인이 번성하는 땅'이라는 구설에 오르고 있기도 하다. 초산에서 이어지는 아양봉의 정상은 298m이다.

1929년 이병연이 편찬한 조선환여승람을 보면 '예전에 성지(城地)가 있다. 구름과 안개로 유명하다'라며 초산을 설명하고 있다.

과연 정상에 오르면 내장산의 아홉 봉우리와 입암, 방장산으로 이어지는 산의 능선에 걸린 구름이 신기하다.

대개, 아양봉의 정상으로 오르는 시작점으로서의 등산로로는 초산마을과 아양동 쪽이 무난하다.

호남중고의 옆에 위치한 초산마을은 정읍교에서 광주쪽으로 나가는 국도의 왼편에 위치해 있으며 1786년 만들어진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적시된 '미동(米洞)'으로 추측되고 있다.

호남고 옆 담을 따라 포장길을 가다보면 설치시기가 미상인 '초산 약수터'가 풍부한 수량을 연중 자랑한다. 길가에 위치해 있으면서 오가는 등산객의 갈증을 해소시킨다. 아무리 가물어도 그친 적이 없다 한다.

두 곳의 등산로가 곧 나타난다. 한 곳은 무덤이 산재되어 있는 과교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상으로 통하는 등산로와 아양봉 정상으로 곧바로 연결되는 등산로가 그것이다.

아이를 동반한다면 정상과 곧바로 통하는 등산로가 조금은 안전하다.

누구, 누구의 선조들의 무덤을 지나 중간 능선에 서면 오른쪽이 초산으로 통하며, 왼쪽으로는 아양봉 정상이다.

초산에는 초산성지(楚山城址)가 있다. 축성연대는 미상이나 후백제 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초산성은 산의 정상을 3단계로 깎아 성을 쌓았다.

하단의 석축이 서북으로 높이 1.5자, 길이 70m 정도가 남아있으나 목측(目測)이 쉽지는 않다. 중앙에 주춧돌 몇 개와 북쪽으로 성문지(城門址)와 우물터가 남아 있다.

초산과 관련해서 정읍시사(井邑市史: 2003년 간)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정읍의 향토사를 거론할 때 의문점 중 하나가 읍호(邑號: 고을이름) 초산(楚山)에 관한 기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중 정읍현 군명조(郡名條)에는 정촌(井村), 초산(楚山)의 기록이 있으나 연혁조(沿革條)에는 언급이 없어 과연 정읍에 초산군(楚山郡) 시대가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다.」라면서.

「향교의 연혁조를 보면 초산군에 대한 언급으로 "한때 초산군이 되었다"라는 기록이 신라와 고려 사이에 거론되고 있는 점을 보면 이는 후백제의 역대를 의미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초산성이 삼한시대 마한(馬韓)의 52국(國) 중 하나인 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의 유지(遺址: 남겨진 터)라는 설도 있으나 후백제의 견훤이 외침을 막기 위해 세웠을 것이라는 추정에 무게는 더 한다.

발길을 돌려, 아양봉 정상에 서면 시내와 멀리 펼쳐진 완만한 산들의 형태가 정겹다.

산불감시초소와 정읍시내 지역과 일부 면 단위의 송신상태를 책임지는 KBS 방송중계소가 위치해 있으며, 사람들의 발길로 봉분의 절반이 닳아 없어진 무덤이 위치해 있다.

시내 쪽을 바라보고 서면 오른편으로는 정읍사공원과 예술회관, 전북과학대학과 신월동으로 넘어가는 아요현(阿要峴)이 보이고, 정면으로는 정읍천을 건너 시가가 한눈이다.

왼편으로는 초산과 죽림, 연지동 그리고 호남고속도로가 보이고, 뒤쪽으로는 복원되는 정촌현, 신정동 신도심예정지가 펼쳐져 있다. 많이 사용되는 등산로는 아니나 뒤쪽으로 곧장 하산하면 대나무로 유명한 죽리(竹里)로 통한다.

본래 석산(石山)에 있었으나 수몰로 인해 교암동으로 옮긴 '손경엽이효정려(孫景曄二孝旌閭)'의 주인공 손경엽의 무덤이 죽리의 뒷동산(초산자락)에 있다.

아양동은 아양산 아래 마을을 일컬으며 원래 통칭 '애터'이다.

아양산은 정읍현아(井邑懸衙)를 둘러싸고 있는 다섯봉우리 중 하나로 속칭 '애산'이다. 산의 옆을 따라 과교동 쪽으로 통하는 고개를 아요현이라 부르며, 옛날 이 고개에 성황당(城隍堂)이 있었다 해서 '서낭당 고개'로 불렸었다.

애터는 정읍사공원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으로 이곳에는 옛날 아장터(兒葬터 애장터)가 위치해 있어 불리어진 지명이다.

이 아양동에 1975년에는 정읍고가, 87년에는 정읍중학교가 이전하고, 92년에 들어서는 예술회관과 시립국악원 등이 세워지고 청소년 수련회관과 전북과학대학이 그 뒤를 이었다.

현존하는 백제시대 유일의 가요 '정읍사'와 얽힌 망부석의 소재에 대해 조선환여승람은 '군의 북쪽 10리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어, 현재 정읍사 망부상이 서 있는 위치 인근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읍사의 발원현장에 6만7천여평 규모로 공원이 조성되어 1986년 백제의 여인상인 망부상이, 94년엔 정읍사 사우가 건립되었으며 96년에는 노래비가 건립되었다.

공원에는 체육시설과 약수채수 시설, 도서관, 야외공연장 등이 마련되어 정읍지역 문화공연과 시민 쉼터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다.

공원의 위쪽으로는 단풍나무 숲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산림욕을 할 수 있는 숲길(해발 168m)이 정갈하게 펼쳐져 있다.

숲길(산림욕 길)의 끝 지점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385m의 바위 등산로는 매우 험한 길로서 주로 내림용으로 등산길로 쓰인다.

초산에는 소나무, 화백, 잣나무, 편백 등이 고루 분포되어 도시공간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 25~60%까지 해소할 수 있다는 이론이 있다.

초산의 뒷부분은 상교동사무소가 위치해 있는 구계마을을 비롯해서 속칭 '독고멀'인 석고촌, 그리고 구암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계촌은 초산의 남쪽마을로 옛날 향교가 있었다고 전하나 흔적은 없고, 구암(九岩)은 마을안에 바위 9개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서 1986년 문화재 지표조사로 인해 발견됐다.

이봉호씨 집에 6기(基)가 있으며 고 안정섭, 임봉수씨의 집 등에 모두 지석묘(支石墓) 9기가 확인되고 있다.

안병기(47) 통장은 이와 관련 "지석묘의 발견 등으로 주택 보수 등에 적지 않아 불편이 따르고 있지만 문화재 보호에 대한 마음으로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보다 체계적인 관리가 아쉽다"고 말했다.

초산성지에서 호남고 쪽으로 내려오는 등산로는 정비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