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돌풍 유성엽 그는 누구인가

2008-04-14     정읍시사

유성엽의 발자취

  

□ 단란한 가정에서 올바른 가치관 정립

제18대 총선에 당선된 유성엽 당선자는 정읍시 옹동면 산성리 옻밭골에서 1960년 1월 25일 농업에 종사하시던 부친 유진열씨와 어머니 박정순 여사와의 사이의 3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년기 그리 풍족하지 못했던 집안 살림이지만 언제나 유 당선자 뒤에서 인생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세상을 품는 넉넉한 지혜를 갖도록 배려한 것도 그의 부모님 덕이라 회고한다.

그리고 그는 89년 광주출신의 아내 나수영씨와 인연을 맺어 결혼해 3녀를 두었고 물질적 풍요보다는 가족 간에 정이 넘치는 오붓한 가정을 만들었음을 매우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그의 청년기는 그리 순탄치만은 못했다. 당시만 해도 도내 상아탑의 명문인 전주고를 나와 80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입학했으나 당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하늘을 찌를 듯 드셌던 시국에서 학업과 사회참여 사이에 갈등과 방황의 시기를 거친 386세대였다.

이 시기, 어느 쪽도 충실하지 못하고 3년여의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사회진출을 앞두고 언론과 공직의 2가지 진로를 놓고 고민하다가 공직이 갖는 적극적 역할에 무게를 두고 제27회 행정고시를 보게 된 것이 공직과 인연을 맺게 된 동기였다.

□ 힘들었지만 보람된 공직생활

첫 발령지인 전라북도에서 5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내무부로 가서 당시 30년 만에 부활.실시되는 지방자치 준비업무를 담당했고, 또 지방자치가 실시되는 과정에서도 지방자치 업무를 보게 되어 지방분권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식, 바람직한 지방자치 상을 항상 가슴에 새겨뒀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가 다시 전라북도 도청에서 기획관, 문과관광, 환경보건, 경제통상국장 등 도정을 수행하는 과정에 특히, 환경단체나 주민 등 이익단체와 첨예하게 대립했던 ‘옥정호, 부안댐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이나 도민의 염원이었던 ‘새만금사업 재개’ 등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며 합리적인 대안제시와 조정으로 원활한 사업진행을 이끌어 내 갈등 조정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행정 안팎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닉네임도 붙기도 했다고.

□ 목민관을 꿈꾸며

유 당선자가 지역발전을 위한 고민은 사실, 행정공무원으로 도청에 근무하면서 지역의 열악한 재정과 지역민들의 염원인 숙원사업 등에 관심을 가지면서 싹을 피웠다.

어려웠던 유년기시절을 보냈던 고향의 농촌 실정에 대해 누구보다 앞서 관심을 가졌고 이러한 집념으로 인해 중앙부처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까지 포기하고 지역에 봉사하면서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마음으로 공무원의 길을 접고 민선3기 정읍시장에 도전하기에 이른다.

정읍시장 재임시절을 회고하는 유성엽 당선자는 “시장으로 시정을 책임지는 동안 농촌이 살아나고 고향의 부모님께서 편안해야 중앙정치가 안정되고 도회지 자녀들이 안심하고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며 “결국 농촌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잘사는 길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결국 유 당선자가 민선3기 정읍시장 재임하면서 많은 공무원들과 시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 전라북도 내 자치단체장을 대상으로 한 언론평가에서 ‘갈등 조정능력’, ‘청렴성과 도덕성’, ‘인사공정성’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유성엽 당선자는 인터뷰 말미에 “저는 저를 낳아주고 길러준 정읍을 위해 항상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주민의 향상된 삶의 질을 위해 발로 뛰면서 공복으로서의 충직한 자세를 잃지 않으려 제 스스로를 채찍질해 왔습니다. 그러한 노력이 인정되어 정읍시민들이 받아야 할 큰 상인 국무총리표창과 녹조근정훈장을 받는 영광까지 누리게 되었습니다”라며 “이번 총선을 계기로 국회에 나가 시민들이 더 잘살 수 있는 고충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국회의원이 될 것”이라 굳은 결심을 보였다.

<대담정리=변재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