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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에서 숙빈 최씨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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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에서 숙빈 최씨를 만나다!”
  • 정읍시사
  • 승인 2006.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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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 생모의 숨결 서린 … 숙빈최씨 만남의 광장!
유교가 뿌리를 내리고 찬란한 꽃을 피웠던 유교문화의 산실인 선비고을 태인.

태인은 우리나라 유교의 종장 고운(孤雲) 최치원이 이곳 태산군수를 재임했던 곳이며 대표적인 족적으로 호남제일의 정자로 꼽히는 피향정(披香亭, 보물 제 289호)과 국왕의 생모가 태어난 곳으로 명명이 높다.

특히 태인면 태창리 대각교(大脚橋)는 숙종의 후궁이자 조선 제 21대 왕 영조(1694~1776)의 생모인 숙빈 최씨(1670~1718) 설화가 깃든 곳으로 조선왕조 500년에서 최고의 신분상승을 이룬 사례로 꼽히는 영조의 생모의 이야기가 서려있다.

이곳에 최근 ‘숙빈 최씨 만남의 광장’이 들어서 간접적으로나 그 숨결을 만날 수 있다.

시는 최숙빈 관련 유적을 정읍관광의 시작이자 시민 쉼터로 활용하겠다는 취지를 세우고
특히 농특산품 판매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1000평의 부지에 3평의 정자, 최숙빈 설화를 담은 아내판과 폭포, 물레방아가 들어섰고 분수와 파고라, 나무다리와 함께 33평의 농특산품판매장, 주차장 등이 조성됐다.

숙빈 최씨는 인현황후(1667~1701년) 장희빈(?~1701년)에 의해 폐비되어 사가에 나가 있을 때 그 은정을 잊지 못해 밤마다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리던 중 숙종의 성은을 입었다.

역사에 따르면 서인 김춘택과 함께 장희빈과 남인을 밀어내고 인현왕후를 복위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고 숙종 27년(1701년) 인현왕후가 죽자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하였다고 숙종에게 알려 장희빈을 사사(賜死)케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숙종 25년에 후궁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인 정1품 숙빈에 올라 숙종 44년인 49세에 유명을 달리했다.

한편 최숙빈과 태인 대각교와 관련된 설화는 1930년 장봉선이 편집한 ‘정읍군지’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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