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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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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독립운동가
  • 변재윤
  • 승인 2006.10.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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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강(一江) 김 철(金澈)선생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국권회복과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김 철선생(1886.10.15~1934.6.29)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익산 보훈청에 따르면 선생은 1886년 전남 함평에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에 유학하여 1915년 명치대학을 졸업한 근대지성으로 1917년 독립운동에 뜻을 품고 상해로 망명, 1918년 민족자결주의가 제창되자 여운형 등과 함께 신한청년당을 창당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또 1919년 초 선우혁.서병호 등과 함께 비밀리에 국내로 들어와 국제정세를 알리며 거족적인 독립운동을 추진하여 3.1운동 봉기를 도왔으며 3.1운동이 발발하자 상해로 돌아와 신한청년당을 중심으로 임시정부 수립운동을 폈다.

그리고 4월10일 제1회 임시의정원의 전라도 의원으로 당선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임시헌장」제정 및 정부 조각에 참여하였고, 제2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는 임시정부의 재무위원 겸 법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특히 8월 5일 임시정부 교통차장에 임명되어 당시 취임하지 않았던 총장 대리를 겸하면서 맹활약했다.

이와 함께 선생은 신한청년당 기관지「신한청년」의 발간을 주도하여 국내외 동포들의 독립정신을 고취해 갔으며 또한 임시정부 지원단체인 대한적십자회 상의원으로 활동하고 1920년에는 김구.손정도 등과 함께 의용단을 결성하여 독립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같은 해 3월 임시정부 선전위원회가 조직되자 안창호를 도와 선전사업에 애쓰는 한편, 국내외 동포사회에 임시정부의 활약상을 소개하면서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힘을 쏟았다.

1926년에는 국무령제 정부의 각료인 국무원으로 활동하면서 임시정부의 부흥에 힘썼다.

이어 1930년에는 안창호․김구 등과 함께 한국독립당 조직에 동참하고 국무위원제 정부의 군무장이 되었고 1932년에는 상해 한인동포들의 권리증진과 생활안정을 위해 조직된 교민단체인 대한교민단 정치위원으로 선출, 같은 해 11월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에 임명되는 등 임시정부와 교민단체의 핵심간부로 활약했다.

윤봉길 의거 이후 상해에서 항주로 이동한 임시정부에서도 1934년 국무위원으로 재차 선임된 뒤 재무장의 일을 맡아 재정확보에 힘을 쏟았으며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민족독립과 조국광복을 위해 애쓰다 절강성 항주에서 1934년 6월 29일 신병으로 서거하였다.

이에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이와 관련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선생의 뜻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여 관련 자료와 사진을 10월 한 달간 전시하는 한편, 순국선열유족회에서도 선생에 대한 학술강연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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