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에 갈곳은 없고…, 마을회관에 가봐야 에어컨도 안나와서 다리밑을 찾았지"
정읍시 시기동 시기파출소 다리 밑에서 피서를 즐기는 이귀남 옹(95.시기동)은 "이곳에 나와야 사람 구경할 수 있고 막걸리로 목을 적실 수 있어 최고"라고 말했다.
일명 '시파 다리밑'이라 불리는 이곳은 더위를 피해 매일 200~300명의 시민들이 찾는 시민의 쉼터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곳을 찾는 이용자들은 대부분 70, 80대 노인들이 차지하고 있어 노인전용 쉼터로도 각인돼 있다.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다는 이귀남 옹은 최고령자이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고, 얼마전 아내를 여읜탓에 최근에는 찾는 빈도수가 더 늘었다.
이 옹은 "동네에는 갈곳이 없고 사람을 구경할 수도 없다"며 "그나마 마을회관이라고 에어컨이 없어서 사람이 오질 않고 햇볕이 안드는 이곳이 최고"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읍시 관내 11군데의 노인복지시설 가운데 중앙 공급 방식 냉방을 하고 있는 곳은 한곳 뿐이고, 여기에 법인이 운영하는 곳을 포함 에어컨이 설치된 곳은 6군데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여름철 에어컨 가동을 중단한 곳이 대부분이어서 노인들이 편안히 더위를 식힐 장소가 부족한 형편이다. 이처럼 노인 복지시설의 냉방시설이 부족하게 되자 정읍천 다리밑은 삼복더위에 장사진을 이룬다.
더위를 식히기에 그만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시내버스로 30~40분 걸리는 이평.덕천면에서는 물론, 인근 부안에서도 하루 일과삼아 찾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이곳을 찾는 것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장기와 바둑을 즐길 수 있어서 사랑방으로는 최고의 공간이기 때문.
전혀 모르는 얼굴도 장기와 바둑을 두다보면 금새 친해지고, 이미 벌린 한판에 둘러싸여 훈수를 두는 사람들도 연신 자신의 실력(?)을 뽐내려 한 수 거들다보면 친구사이로 변하고 만다.
500~1000원을 걸고 내기바둑과 장기를 두는 것은 흔한 풍경이다. 한 노인은 "이곳에 오면 장기두고 먹고 마시고 해봐야 하루종일 소비하는 용돈은 1000~3000원 정도"라고 말했다.
작년까지만해도 다리밑에 계시는 어르신들을 대접하는 행사들이 줄을 이었는데 최근 경제가 어려운 탓에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정읍천에는 시파다리밑 뿐 아니라 죽림교밑, 샘골다리 아래 등 쉼터 역할을 하는 곳이 2곳 더 있다.
한편 이곳 노인전용 쉼터 이용객이 급증하면서 다리밑 쉼터 뒤안길에는 운영상 문제점도 발생, 양성화 등 대책마련을 해야 한다는 과제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