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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동학농민혁명 신자료 『이풍암공실행록』 최초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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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동학농민혁명 신자료 『이풍암공실행록』 최초 발굴
  • 변재윤 대표기자
  • 승인 2024.12.24 0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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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이자 독립유공자인 풍암 이병춘의 활동 내용을 정리한 자료인 이풍암공실행록(李灃菴公實行錄)을 새롭게 발굴해 처음으로 공개한다.

이풍암공실행록(李灃菴公實行錄)은 풍암 이병춘(李炳春)의 활동내용을 기록한 자료다.

표지에 포덕(布德) 52(1911) 정월이라고 되어 있고 자료 말미에 포덕(布德) 56(1915) 10월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911년 작업을 시작해서 1915년 완성했다고 보여진다.

이 자료는 이병춘이 구술하고 그의 문하생인 김재홍이 내용을 정리해서 기술하고 있다.

자료명을 이풍암공실행록이라고 붙인 것은 그러한 연유 때문이다. 자료는 총 112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국한문 혼용체로 쓰여져 있다. 이 자료는 이병춘의 손자인 이길호(천도교 전주교구장)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제공하여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이병춘은 18642월 전라도 임실 상동면 효촌(왕방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1888년 동학에 입도했고 189212월에 대정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동학교단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했고 1894년에는 접주로 임명되어 동학농민혁명에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특히 18944월 전라도 진산에서 체포되어 많은 고초를 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에 어렵게 탈출하여 피신활동을 이어 나갔다.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후에는 천도교에서 천도교 전주 대교구장, 성도사 등 여러 직책을 맡아 활동했다.

1919년에는 전주를 중심으로 3.1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이병춘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3.1운동 이후에는 종법사, 법정 등 주로 천도교의 고위 직책을 맡아 활동하다가 19336월 사망했다. 그가 사망하자 천도교 중앙 교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졌고 전국에서 조문이 이어져 만장행렬이 끝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풍암공실행록은 동학농민혁명이 끝나고 불과 17년이 지난 후에 동학농민혁명에 직접 참여한 이병춘이 구술하고 문하생인 김재홍이 기술하였다는 점에서 사료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고 그 내용도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풍암공실행록(李灃菴公實行錄)의 가장 큰 사료적 가치는 동학교단에 속해 있으면서도 동학농민혁명에 적극 참여한 이병춘의 기록을 통해 당시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 주력과 최시형의 동학교단과의 관계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이 자료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앞으로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이해가 심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신영우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소장은 이풍암공실행록의 발굴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고 직접 남긴 사료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연구소는 이 자료를 1130일에 발간한 학술지 동학농민혁명 연구3호에 소개하여 많은 사람들이 보고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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