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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3월 독립운동가 석호필 박사와 6.25 영웅 오금손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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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3월 독립운동가 석호필 박사와 6.25 영웅 오금손 대위
  • 김상옥 기자
  • 승인 2016.03.06 2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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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손 대위 ▲스코필드 박사
[정읍시사] 전북서부보훈지청(지청장 이우실)이 국가보훈처에서 3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와 6.25 전쟁영웅에 오금손 대위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달의 독립운동가 F. W. 스코필드 박사(한국명 석호필)는 영국 태생으로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세균학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강의하던 중 1916년 11월 캐나다장로회 선교사 자격으로 부인과 함께 내한해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을 가르쳤다.

1919년 3월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일제가 자행한 화성 제암리 교회 학살 방화 현장과 수촌리를 방문해 사진을 찍어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고 같은 해 5월 직접 서대문형무소를 찾아가 당시 수감되었던 유관순 등 잡힌 사람들의 수형생활을 돕기도 했다.

이후 일제의 감시는 물론 살해 위협까지 받다가 1920년 4월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돌아간 뒤에도 강연이나 기고를 통해 한국의 비참한 상황을 알리고 일제의 만행을 비판했다.

1958년 8월 국빈 자격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스코필드는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했고 1968년 정부는 자주 독립을 위해 생애를 바친 스코필드 박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한국을 조국처럼, 한국인을 동포처럼 사랑한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공적으로 소위 ‘민족대표 34인’으로 불리며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이달의 6.25 전쟁영웅 오금손 대위는 1930년 독립운동가 오수암 선생의 외동딸로 북경에서 출생해 돌전에 부모를 잃고 중국인 가정에서 자라다가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 항일투쟁의 길로 나서게 된다.

해방 이후 개성 간호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개성도립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오금손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조국을 지키고자 자진 입대했고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초 포항 형산강지구 전투에서 부상자들을 돌보던 중 병원을 기습한 북한군에 당당히 맞서 이를 물리침으로써 2계급 특진, 대위로 진급하게 된다.

1951년 7월 화천 구만리전투에서 포로가 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으나 탈출에 성공해 근무 후 전역했으며 그후 6천여회가 넘는 안보강연을 하는 등 국민안보의식 고취에 앞장섰다.

향년 74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늘 조국만을 생각하며 일생을 나라에 바친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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