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여건미흡으로, 지방 스스로의 노력부족으로 수용능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 점에서 지방은 스스로 밤잠을 자지 않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방의 수용능력이 부족하거나 없는 근본적인 원인은 중앙에서 정하고 운용하는 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기구나 정원이, 개방형으로 쓸 수 있는 자리의 수나 그릇이 시․군 보다는 도가, 도보다는 중앙정부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리하게 되어 있다. 이러하니 전문성을 갖는데도, 자주적인 정책 수립 및 집행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에도 취약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정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방의 자주적인 노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고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스스로의 개선 여지도 있다. 그러나 국세 80%, 지방세 20% 배분 하에서 지방이 자율적 재정능력을 가진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제 5공화국 헌법부칙에서 지방의회는 “지방재정자립도를 감안하여 순차적으로 구성한다”라고 했다. 지방재정자립도가 미흡해서 전면적인 지방자치를 실시하기가 곤란하니 재정자립도를 보아 가면서 단계적으로 실시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누가 지방의 재정자립을 가로막았던가. 바로 중앙정부가 정해 놓은 세제(稅制)의 내용이 지방의 재정자립을 근본적으로 봉쇄했던 것이다.
지방의 수용능력과 관련한 상황이 이러함에도 지방의 수용능력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에 지방이양(지방분권)을 시원하게 추진할 수 없거나 해서는 안 된다 라는 주장은 지극히 본말이 전도된 어불성설이다.
지방의 수용능력이 빠르게 향상될 수 있도록, 그래서 지방분권의 토양이 제대로 갖추어 질 수 있도록 중앙의 전향적 조치와 노력이 요망된다. 지방의 능력을 탓하면서 지방분권을 저지하거나 지연시키는 논리로 활용하는 자가당착적 모순을 스스로 극복하는 솔직성과 순수성을 중앙정부는 보여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제도적 과제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의 지방분권로드맵에 잘 정리되어 있다. 문제는 이런 정책과제들이 실행단계에서 중앙의 시각에 의해 변질되고 왜곡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기치로 내건 균형발전은 행복도시 건설, 중앙공공기관이전 등의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분권만은 자치경찰제도입, 교육자치, 지방이양 등 어느 측면에서도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것 또한 중앙의 지방에 대한 여전한 불신을 웅변하는 사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과 물자, 재원을 통째로 지방에 넘기는 과감한 자기혁신이 없이는 진정한 지방분권은 실현될 수 없다. 중앙의 열린 자세와 전향적 조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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