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광대학교 사학과 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동학농민전쟁의 실체와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중요”
지역 역사 발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얼 역사연구소 최창묵 소장(사진)이 원광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아 주위의 부러움과 격려를 받고 있다.
최창묵 소장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동학’이라는 주제를 선택, 수년간의 연구 끝에 지난달 20일 ‘동학농민군의 전주성 점령에 관한 연구’ 논문을 일궈내 학위를 수여받았다.
최 소장은 “주변 교수님들도 까다롭고 어려운 동학의 주제 선택에 좀 더 쉬운 것을 선택하는 것이 어떠하냐는 권유도 받았지만 동학농민혁명의 본류인 고부를 비롯 정읍에 대한 학계의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민란 수준으로 격하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동기를 부연했다.
논문에서 최 소장은 1894년 1월 고부농민봉기는 고부군수 조병갑의 가렴주구가 원인이 됐고 전라감사 김문현의 고부군민 진정사건 부당처리가 전주성이 공격목표가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며 고부농민봉기와 전주성 진격과정을 파악했다.
그는 사발통문 제4항에 ‘전주감영을 함락하고’라는 내용 등을 참고해 볼 때 고부농민봉기는 초기부터 고부군 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라감영과 연계된 것이며, 전봉준이 전라도 58주의 동학당에게 격문을 띄워 전운영을 파괴하고 폐정을 이혁하자는 창의 격문을 보낸 점 등을 빌어 고부농민봉기는 동학농민전쟁의 시발점으로 판단된다고 기술했다.
이어 동학농민군이 백산대회 결의대로 전주성을 바로 공략하지 못한 이유와 동학군의 세력이 11,700여명으로 신술평균을 제시하면서 3-40대가 주축이 된 것으로 분석했다.
또 전주에 대한 전략적 요충지의 성격 분석과 완산전투의 경우 동학농민군이 일방적으로 밀린 전투가 아니라 열세에도 불구하고 전주성을 끝까지 사수했던 점을 부각했다.
이는 최소장이 동학농민전쟁 전개과정 중 동학농민군의 최대 전과로 평가되는 전주성 점령과정을 중심으로 벌어진 전개과정을 조명하고 고부봉기와 전주성 입성과 항쟁 등에 초점을 맞춰 그 중요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로 풀이된다.
최 소장은 전주화약과 집강소 운영, 전주대도소의 역할과 존재의 실체를 근거 삼아 『1894년 동학농민전쟁 전개과정 중 동학농민군의 최대 성과로 평가되는 전주성 점령과정에 대한 연구와 분석은 동학농민전쟁의 실체와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중요한 사건』이라고 결론을 도출했다.
인터뷰에서 최창묵 소장은 “정규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 주경야독으로 공부에 전념하다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면서 “연구논문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의 고부봉기와 전주성 입성에 대한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기를 바란다”며 그간 도움을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얼 역사연구소 최창묵 소장은 애향정구회 초대 회장과 청소년 향토학교 교장, 얼학회와 정읍밀알회 회장을 지냈으며 공무원 퇴직 후 3대 정읍시장 선거 무소속후보와 4대 정읍시장 선거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나서기도 했다.
민주당 중앙당 지방자치위원회 부위원장과 민주당 대선 선대위 교육문화위 부위원장직을 역임한 그는 현재도 민주당원 소속으로 내년 6월 지방선거에 출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포부이다.
망제동에 사무실을 꾸리고 늘 지역 발전에 고민을 하고 있다는 최창묵 소장(문학박사)은 후진들을 위해 현재 원광대학교사범대학 강사와 호원대학교 외래교수로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