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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102주년 3.1 운동을 기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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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102주년 3.1 운동을 기념하며
  • 변재윤 대표기자
  • 승인 2021.03.04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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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정읍.고창연합지회장 안 광 식
안광식 회장
안광식 회장

 

1853년 미국 페리제독이 검은배(黑船) 4척을 이끌고 일본 에도만에 나타나 타의에 의한 개항과 서구 열강 여러 나라와 불평등 조약을 뼈저리게 경험한 일본은 1868년 명치유신으로 서구에서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산업을 십수 년 만에 성공적으로 젊은 유신 주역들은 이루어냈다.

이때 일본은 유신과정에서 소외된 세력의 불만과 정세 불안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조선을 정벌하기 위한 정한론(征韓論)이 거론되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조선 침략 야욕을 노리던 일본은 구한말 1876년 조선과 불평등하고 경제적 침탈 기반을 마련한 강화도 조약을 맺었으며 이 시기 조선의 내정은 1882년 신식 군대와 구식군대 차별에 의한 임오군란이 일어났고 1884년 김옥균, 박영효 등이 주도한 급진 개화파의 갑신정변은 3일 만에 실패하였다.

1894년 반봉건과 위기때 마다 정파에 따라 청나라, 일본, 러시아를 끌어들인 반외세와 폭정에 맞선 동학 농민혁명, 청일전쟁, 1895년 일본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 1904년 러일전쟁, 1905년 열강들의 조선 침략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을사늑약. 1910년 국권을 완전히 빼앗긴 한일병탄(경술국치)은 조선왕조 500년 중 가장 극심한 국난과 몰락으로 이어졌다.

1910년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자 우리 독립운동가는 국외에서 1911년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성립시킨 신해혁명을 참가하고 바라보며 변화하는 국제정세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중국 만주에서 활동하시던 대종교 김교헌, 독립운동기관인 부민단 이상룡 등 39인이 무오년(1918년 음11)에 서명하고 191921일에 선포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한독립 선언서(무오독립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또한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들은 우리 민족의 행복과 이익을 무시하고 정복자의 잔악한 비인도적 정책을 거부하며 2.8 독립선언서를 선포하였다.

3.1운동은 이러한 국내외의 자주독립을 위한 간절한 염원을 이루기 위해 천도교, 기독교, 불교 지도자들이 서명하며 일제에 항거하는 울분의 서울 시민과 학생들이 참여하며 시작되었다.

일본 군경의 총칼에도 아랑곳없이 친일 매국노가 아니라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민족독립 염원을 담아 종교계와 학생이 앞장서고 농민과 노동자가 군중을 이루며 어린이. 걸인, 기생까지 가담하면서 독립운동은 신분에 관계없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19193월부터 5월까지 3개월 동안 국내피해 상황은 순국자 7,509명 부상자 15,961, 투옥자 47,948명 그밖에 교회, 민가, 학교가 수백 채 소실로 알려졌다.

이는 총독부 치하의 전후기록으로 축소되었으리라 사료되며 당시 2,000만 우리 동포의 피해는 더 많았으며 가혹하고 참담하였을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었을까. 암흑 같은 억압과 착취의 노예생활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택해야 하는 우리의 선조들은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하고 공정과 정의사회를 쟁취하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까지 희생하셨다.

3.1운동은 대일항쟁기 50(1895-1945) 동안 우리에게 크나큰 역사적 교훈과 헤아릴 수 없는 정신적 유산과 가치를 남겨 주었다.

3.1운동은 봉건주의 계급사회에서 국민주권주의로 변화의 계기가 되고 군주를 따르는 백성이 아니라 국가의 주인으로 자리매김되기에 이르렀다.

3.1운동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대한민국이란 국호 선포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상징적 결실이다.

대한제국으로 망한 나라를 10년 만에 비록 영토와 국민적 요소를 채 갖추지 못하였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 민족의 주권 의지를 대표하는 곳이었으며 지도자를 대통령, 국무총리라 명명하며 근대국가의 면모와 조직이 갖추어졌고 대한민국 임시헌법을 제정하였다.

3.1운동에서 주목할 것은 서로 다른 종교가 이념을 초월해 민족독립을 위해 총화를 이룬 점이며 종교가 다르면 같은 민족이라도 나라를 분단하고 전쟁을 하는 서구의 종교 지상주의를 볼 때 우리의 독립운동은 세계사에서 주목받는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정치 현실은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 여겨 무책임한 막말과 소통의 부재로 국민을 혼미하게 하며 목숨 바쳐 이룩한 대한민국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지 깊이 반성하고 이 시대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아야 한다.

3.1운동은 여성이 사상 처음으로 역사현장에 등장하며 여성들이 독립된 주체로 봉기하였고 자주적으로 집단적으로 참여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우리나라는 일본, 중국, 소련 등 열강제국들의 틈바구니에서 통치자의 무능과 비전이 없어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지탱하기 버거울 만큼 위태로웠고 일본은 결국 우리를 식민지로 삼켰다.

그 혹독한 짓눌림과 착취 살상, 긴 칼을 쥔 일본 경찰들과 목이 잘린 체 통나무에 밧줄로 꽁꽁 묶여 목이 잘린 우리 독립운동가의 사진은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공동선을 위해 좀 미련해 보이고 답답할 정도로 양보하는 것 같은 삶이 이 혼란의 시대를 바로잡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3.1 독립운동 기념하는 것은 건강한 역사의식, 올바른 역사의식으로 애국과 매국이 뒤섞여 혼돈스러운 시대에 풍요로운 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함입니다.

3.1운동은 통치자의 잘못으로 빼앗긴 조국을 국민이 되찾기 위한 우리 민족의 위대한 혁명입니다.

나라가 없으면 국민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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