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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독립운동가」박 열(朴烈) 선생 (1902. 2. 3 ~ 1974.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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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독립운동가」박 열(朴烈) 선생 (1902. 2. 3 ~ 1974. 1. 17)
  • 정읍시사
  • 승인 2006.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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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박열 선생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익산보훈처에 따르면 박 열 선생은 1919년 서울, 문경에서 31운동에 참가했으며 1922년 흑도회, 흑우회를 결성하고 불령사를 조직해 일왕 폭살 계획을 하는 등 1945년까지 22년 2월간의 옥고 끝에 석방된 공적이다.

선생은 190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어려서 서당교육과 신식교육을 받고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 재학 중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동참하여 만세시위운동을 벌였다.

이후 귀향해 친구들과 함께 태극기와 격문을 만들어 살포하며 문경의 3·1운동을 촉발하여 민족독립의 의지와 열기를 분출하기도.

선생은 또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기는 일본 본토보다 어렵다고 판단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 학업을 계속하며 보다 과학적이고 선진적인 반제이론을 수용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심. 도쿄에 도착한 뒤 정칙영어학교에 입학해 수학하며 저명한 사회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을 직접 찾아가 교류하기도 했다.

이후 효과적인 항일투쟁을 위해 고학생들을 규합하여 의혈단을 조직하고, 조선고학생동우회에 참여하여 간부로 활동했다. 또한 1922년 초 평생 동지이자 아내인 가네코 후미코와 운명적으로 만나 반제 항일투쟁의 길을 같이 가게 되었고 무정부주의단체인 흑도회에 참여해 기관지인 『흑도』의 발간 책임을 맡아 선전활동에 주력,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식민체제 타도를 목표로 하는 의열투쟁노선을 천명하면서 1922년 말 직접행동 조직인 흑우회를 조직하여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생은 또한 식민체제의 근본적 타도를 목표로 하는 직접적이며 무력적인 의열투쟁노선을 가진 불령사를 조직하고, 이를 매개로 폭탄을 반입하여 일왕을 폭살하려고 계획하였다가 관동대진재 당시 일경에 피체되어 폭탄 반입계획이 드러남으로써 ‘대역사건’으로 비화되어 사형을 받았다.

이때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고 일갈해 불굴의 독립정신을 표출하였고, 이후 무기로 감형되어 일제 패망 뒤인 1945년 10월까지 장장 22년 2개월의 옥고를 치른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지난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이달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여 관련 자료와 사진을 한 달간 전시하는 한편, 순국선열유족회에서도 이 달의 독립운동가 학술강연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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