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방문자수 : 34,555,795명
UPDATED. 2025-07-16 00:56 (수)
쓰나미 롯데마트
상태바
쓰나미 롯데마트
  • 정읍시사
  • 승인 2008.11.25 22: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 청와대 행정관 나종윤

1993년 11월,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할인점 ‘이마트(E-mart)’가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문을 열었다. 외국계 업체와의 기술제휴나 협력관계가 아닌 신세계 독자개발의 한국형 할인점이라는 것과 가격 할인과 파괴의 변혁을 이루며 소비자에게 일괄구매(one-stop shopping)의 편익까지 제공하면서 유통경로에 일대 격변을 예고하게 된다. 이후 대형 할인점들의 공격적인 창업 및 출점이 이어지면서 상품의 가격 결정권이 제조업체에서 유통업체로 이동하게 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1996년, 유통시장의 전면개방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한국형 토종할인점들은 세계적 유통업체인 네덜란드의 마크로, 프랑스의 까르푸, 미국의 월마트 등과의 살벌한 혈전(血戰)을 딛고 경쟁에서 살아남았으며, 현지화에 실패한 이방인들은 인수합병(M&A)과정을 거치면서 토종할인점에 회사를 매각하고 스스로 철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시장점유율 부동의 1위를 고수하며 세를 확장시킨 신세계 이마트(E-mart)가 여타 경쟁 업체들에게 벤치마킹(bench-marking)의 대상이 되었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할 일이었다.

1998년, 롯데마트(Lotte-mart)의 전신이었던 ‘롯데마그넷(Lotte-magnet)’이 역시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에 1호점인 강변점을 개장하였다. 2002년, 마그넷(magnet)에서 마트(mart)로의 개명(改名) 이유가 유통의 주류로 인식되었던 E-mart 따라잡기의 일환이었을 것임을 짐작해 본다면, 마케팅 전략 또한 글로벌 업체들과의 경쟁에서도 능히 살아남은 비정한 경영능력으로 지역의 토종 상권을 고사(枯死)시키는 일을 시간문제로 남기게 할 것이다.

지역에 들어서는 대형할인점들은 분명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은 지역민들에게 쾌적한 소비환경과 수준 높은 판매서비스를 제공해 주며 양질의 다양한 상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게 해준다는 시혜(施惠)의식으로 출점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근세 제국주의의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삼으며 신작로(新作路)를 열고, 철도를 놓고, 항만(港灣)을 구축한 이유가 자원 수탈이 아닌, 조선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함이었다고 말하는 식민사관(植民史觀)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인 미국의 월마트(Wal-mart)가 입점하게 된 미국의 중소도시는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유령도시가 되어 갔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상황이 그곳에서 월마트를 몰아내도록 작용하였다. 지역상권이 붕괴되면서 그 여파로 소비능력을 갖추었던 기존의 세력들마저 노동과 생산이 창출되는 삶의 터전을 잃어갔기 때문이다. 이윤이 환원(還元)되지 않는 일방적 소비의 지속은 결국 지역민들의 자원과 자본을 고갈시킬 것이다.

정읍의 열악한 경제규모에서 기존의 하나로마트가 메가급의 폭풍이었다면 롯데마트는 기가 혹은 테라급의 충격이다. 폭풍이 아닌 쓰나미(tsunami)란 얘기다. 과연, 누가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투고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