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인간 장연호에 대해 흠뻑 빠져들었다. 영원한 로맨티스트 장연호는 영웅으로 다가왔다"
늘 아버지에게 불만이 많았던 아들은 "왜 아버지를 이해 못했을까"라는 부끄러움을 이제 느낀다.
아내의 팔순을 맞아 중학교 시절부터 쓴 일기를 기초로 자서전을 출간, 세간의 부러움과 함께 인생을 관조하는 저자에 대한 큰아들 장기철씨의 흠모가 가득하다.
칠보 산골 소년의 정읍 입성과 6.25때 가족을 책임진 학생가장, 겁 없던 청년기를 거치면서 호남고의 영어교사로 자리 잡아 평생을 제자들에게 헌신했던 동광 장연호 선생(81)의 자서전이 출간, 세간에 화제가 됐다.
장기철씨는 "불의는 참지 못한 의로운 사표요, 자식들에겐 엄격하면서도 한없는 애정을 주신 속 깊은 분. 어머니에겐 꿈을 짓밟은 미운 상대가 아니라 이젠 가정 소중한 사람으로 자리한 분. 그분은 아버지"라고 담담히 소개한다.
평생 영어를 가르쳤던 분이었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짚어보는데 딱 맞는 제목을 고민했던 그는 그래서 <마이 네임 이즈 장연호(캣치리더스.2만원)>를 탄생하게 도왔다.
지난 6월 중순 출판 기념식도 조촐히 치룬 저자는 "앳된 모습으로 시집와 이젠 중후함이 물씬 풍기는 아내, 아직도 조심조심 다른 사람 마음 살펴가며 가만히 곁을 지켜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내 곁에 있다"고 아내에 대한 애정을 그려낸다.
저자는 "벚꽃이 피었다가 푸른 잎들을 세상에 내보내는 순리에 잠시 겸허한 마음이 되어 꽃같이 고왔던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이 책을 바치고 싶다"고 지극한 존경심도 표한다.
저자와 벗이기도 한 신극범 대전대 총장은 "지난 65년의 기나긴 세월 썼던 일기를 출판한 이 책은 저자 자신과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와 교육계에 널리 익혀 우리 현대사를 바로 이해하고 많은 지혜를 얻게 되길 기대한다"고 찬사를 보냈다.
총 7부 227페이지로 구성된 책은 ▲1부 식민지 시대 귀한 장손으로 태어나, ▲2부 6.25전쟁 피난, 들꽃같은 시절, ▲3부 낭만과 고뇌의 대학시절, ▲4부 만남과 결혼, 그리고 입대, ▲5부 모교에서 평생 교편을, ▲6부 고향 칠보에서의 푸른 꿈, ▲7부 동광 단상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역사를 회고한다.
특히 일제 강점기 정읍의 모습이 연상되는가 하면 6.25전쟁을 맞은 소년의 피난기에 정읍 구시장의 포목점이 현재 재래시장의 상가로 연상되는 어구들은 집안의 역사를 넘어 정읍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연대 대학시절 풋풋했던 연예시절의 사진과 수없이 습작했던 청년 장연호의 고뇌는 때론 낭만으로, 때로는 고향에 대한 향수로 가득하고 학문에 대한 갈증이 진하게 묻어있다.
서책에서 그는 양주동 교수와 정읍여중 출신 여자친구의 오빠인 서정주 시인과의 만남을 기술하며 결백을 밝힌 대목과 숙대 총학생회장의 중매, 군대생활과 낙향후 호남고 교사 질풍노도의 생활, 큰 아들의 18대 국회의원 깜짝 출마 비화..그리고 선거 후유증 등 눈길을 끄는 제목들도 무척 흥미를 자아낸다.
『지혜롭고 현명해도 난체 하는 일 없이 우둔한 듯이 굴고, 세상을 뒤엎을 만한 공로가 있다 해도 과시하는 일 없이 그 공을 남에게 돌리고, 힘이 장사라 할지라도 완력을 쓰는 일 없이 조심하게 굴고, 천하가 아는 엄청난 재부를 지녔다 해도 거만 떠는 일 없이 겸손하게 처신한다. 남을 책망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책하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한다.』
가장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했다는 81세의 작가는 이제 그가 지켜왔던 신조대로 고향 칠보에 '장연호 나무학교'를 세우고자 한다.
자서전 <마이 네임 이즈 장연호>는 결국,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20계명으로 독자에게 각인된다.